스물한 살,
짧지만 깊은 발자취
1965년 4월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1월 14일 스물한 살로 생을 마감한 박종철. 부산에서 자라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에 헌신하기까지의 짧지만 깊은 발자취입니다.
부산에서 자란 청년
박종철은 1965년 4월 1일 부산에서 아버지 박정기 씨와 어머니 정차순 여사 사이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산토성초등학교, 영남제일중학교,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보통의 공부 잘하는 학생이 걷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학생의 길을 걸었다. 하얀 얼굴과 재치있는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이런 박종철에게 자극을 준 사건은 1979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조종을 울린 부마민중항쟁이었다. 열사가 중학교 3학년이던 그해 10월, 부산-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들불처럼 일어난 부마항쟁의 열기는 어린 열사에게 막연하게나마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열사의 형인 박종부도 박종철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서강대 운동권이었던 형의 의연한 모습이나 형이 보던 서적은 박종철이 이후 대학에 진학해서 학생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언어학과와 민중 지향 학생운동
박종철은 재수를 하여 19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한다. 박종철이 입학한 그 해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기만적으로 추진한 「학원자율화조치」로 제한적이나마 열린 공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박종철은 치열한 고민과정을 거쳐 「대학문화연구회」라는 비공개 써클에 가입했고, 체계적인 학습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민중지향적인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2학년 때는 과 대표를, 3학년에 올라가서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언어학과와 인문대 학생자치활동에도 앞장서면서 학생운동의 선봉에 선다. 공장활동·농촌활동 등을 통해 노동자·농민 등 민중들의 삶을 체화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직접 저항하는 가두투쟁과 민중연대투쟁에도 앞장섰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시련을 겪었다 —
- 1985년 5월 · 도시빈민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사당동 가두시위로 구류 5일
- 1985년 6월 ·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노동자 정치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지원하는 가리봉동 가두시위로 구류 3일
- 1986년 4월 · 전태일 열사의 혼이 담긴 청계피복노조 합법성쟁취대회에 참가했다가 구속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박종철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자신을 추슬렀으며, 그해 7월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민중지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전체 약력 보기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1987년 1월 14일 새벽, 박종철은 자택 앞 골목에서 치안본부 수사관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로 끌려갔다. 그날 오전 11시 20분경, 박종철은 물고문을 비롯한 모진 고문 끝에 사망했다.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수배 중이던 선배의 소재를 밝히지 않았다. 「약속」과 「신의」, 그리고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족민주운동의 대의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긴 결과였다.
그 날의 사실관계와 진상은 별도 페이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1·14 그날